아우슈비츠 흉악한 역사
1. 강제 수용소의 역사
1.1. 수용소 설립과 초기 운영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대상으로 학살하기 위해 만든 강제 수용소로, 폴란드의 오시비엥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폴란드군의 병영으로 사용되다가 후에 나치의 수용소로 변모했습니다.
1.2. 수용소의 규모와 구조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전체 28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우슈비츠 I, 아우슈비츠 II 비르케나우, 아우슈비츠 III 모노비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수용소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며, 가스실과 시체 소각장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3. 해방과 현재의 상황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1945년 1월 27일에 소련 연방의 붉은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습니다. 현재는 박물관 및 전시관으로 운영되며, 1947년에 세워진 희생자 박물관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 학살과 인신매매
2.1. 유대인 학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는 주로 유대인들이 대상이 되었으며, 약 600만 명(유럽 전체 유대인의 80%)이 살해되었다고 추정됩니다.
2.2. 다른 수용자들에 대한 학살
유대인 외에도 폴란드 양심수, 소련군 포로, 로마니(집시) 등이 수용소에서 학살당했습니다.
2.3. 인신매매와 인신매매로 인한 폭동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는 여러 수감자들이 가스실에 보내지기 전 선발과정을 거쳤으며, 수많은 헝가리계 유태인들이 이곳으로 수송되어 학살당했습니다. 또한 폭동이 일어나 인프라가 파괴되는 등의 사건도 있었습니다.
3. 수용소 내 생활과 강제 노동
3.1. 수용자들의 생활 조건
수용소 내 생활은 매우 혹독하고 비인간적이었으며, 좁은 공간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3.2. 강제 노동 형태
수감자들은 강제 노동에 투입되어 산업 생산 등을 하였으며, 크루프나 지멘스-슈케르트 등 독일 기업들과의 협력도 이루어졌습니다.
3.3. 독일산 기업과의 협력
아우슈비츠-모노비츠는 독일의 IG 파르벤이 수용소 내에서 부나-N 합성고무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하였으며, 다른 산업 시설들도 수용소 내에서 운영되었습니다.
4. 가스실과 학살 시설
4.1. 가스실 건설과 가스 사용
1941년 여름과 가을 동안, 지클론 B 가스가 살상을 목적으로 집단 수용소에 보급되었습니다. 이후 SS는 아우슈비츠 제1호에서 같은 해 9월에 대량 학살을 위해 지클론 B 가스를 시험했습니다. 이러한 시험의 “성공”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전역에서 지클론 B 사용이 이어졌습니다. 초기에 SS 기술자들은 수감자들을 갖고 간이 가스실을 설치했지만, 이후 별도의 건물들이 가스실과 함께 지어졌습니다. 1943년 3월부터 6월까지 4개의 대규모 시체 소각장이 건설되었고, 각 시설에는 가스실, 탈의실 및 시체 소각용 오븐이 포함됐습니다.
4.2. 시체 소각장과 시체 처리
시체 소각장은 이후에는 죽음 쿨러로 불릴 정도로 대량 학살을 처리했습니다. 학살 희생자들의 시체는 소각로에서 일일 최대 1,500구에서 2,000구까지 소각되었으며, 그들의 소지품은 분류되어 나치 군에 의해 약탈되었습니다. 수감자들의 머리카락은 잘려 카펫과 가발로 만들어졌습니다.
4.3. 의학 실험과 인위 살해
SS 당국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 의학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신생아, 쌍둥이, 난쟁이 등을 대상으로한 비인륙적 실험, 불임 시술, 거세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유명한 의사인 SS 대위 요제프 멩겔레(Dr. Josef Mengele)는 이러한 실험 중 하나였습니다.
5. 수송 및 선발 과정
5.1. 수감자들의 수송 경로
유럽 전역에서 수송된 사람들은 헝가리(426,000명), 폴란드(300,000명), 프랑스(69,000명), 네덜란드(60,000명), 그리스(55,000명), 보헤미아와 모라비아(46,000명) 등이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은 기차를 타고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로 이송되었으며, 각 국가로부터 수송된 사람들의 수치가 상세히 기록되었습니다.
5.2. 선발 과정
수송된 수감자들은 가스실로 보내기 전에 선발과정을 거쳤습니다. SS 요원들은 강제 노동에 부적합한 사람들을 먼저 선발하여 가스실로 보내었습니다. 가스실로 보내진 수감자들은 가짜 샤워실로 속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송되었습니다.
5.3. 가스실로 보내진 수감자의 처리
가스실로 보내진 수감자들은 가스실 내에서 학살당했습니다. 가스실은 샤워실의 형태를 하고 있어 희생자들을 속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용된 독가스는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치클론 B였으며, 대량 학살에 사용되었습니다.
6. 학살과 독일군에 의한 폭동 진압
6.1. 헝가리계 유태인의 학살
헝가리계 유태인은 1944년 4월 하순부터 7월 초순에 약 440,000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들 중 약 426,000명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로 이송되었고, 그 중 약 320,000명이 바로 가스실로 보내졌습니다.
6.2. 폭동과 폭동 진압
1944년 10월 7일,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 수감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경비대원을 살해하고 시체 소각장과 가스실을 파괴했습니다. 이에 독일군은 폭동을 진압하고, 폭동 참여자들 중 대다수를 살해했습니다.
6.3. 폭동 참여자들에 대한 처벌
폭동에 참여한 수감자들 중 일부는 1945년 1월 초에 공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폭동 참여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가해졌습니다.